제럴드 포드의 리더십(미국 제38대 대통령)
1974년 가을, 리처드 리브스는 의회선거가 종반에 이르렀을 무렵 며칠 동안 신임 대통령을 따라 다니며 「뉴욕」지에 대통령에 대한 가혹한 비평기사를 썼다. 심지어는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의 대통령이십니다.’라는 제목으로 왕관을 쓰고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 있는 시골뜨기 사진을 합성해서 싣기도 했다. 리브스는 또 이렇게 썼다. “왕이 벌거벗었다는 말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는 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일년 후,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한층 더 가혹한 비판을 퍼부었다. “포드는 굼뜨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또한 상상력도 없고, 의사도 분명치 못하다.” 그리고 「뉴욕」지에 실린 가혹하기 그지없는 합성사진은 곧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리브스는 포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다. 1997년 그는 『미국의 유산』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미안해요, 대통령’이라는 제목 하에 그 동안의 정치와 저널리즘의 황폐화에 관해, 특히 공인들이라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대중매체의 성향에 관해 유감을 표시했다. 또한 포드에 관해 썼던 자신의 기사들이 언론의 부정적인 경향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했음을 과감하게 인정했다. 때늦은 지혜의 힘을 빌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포드는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을 잘 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며,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대통령께 나의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것은 겨우 895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임기가 짧았지만 리더십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는 취임 후 처음 몇 주일 동안, 특히 첫 백일 동안 대통령의 능력을 입증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특히 거대한 조직일수록 앞장서서 조직을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지도자가 성격상 채찍을 휘두르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채찍을 맡겨 말을 앞으로 달리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어야 했다는 뜻이다. 일단 지침이 결정된 후에 대통령이나 백악관 팀이 확고한 추진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것이고, 그 같은 불신을 되돌려 놓는 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 포드는 이런 점에서도 역시 문제를 노출시켰고, 이런 약점은 그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권을 넘겨받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점은 집권 초의 그 많은 악재 속에서도 살아 남아 미국인의 존경과 감사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그의 리더십은 긍정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들에게 정직의 가치를 재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진실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접착제와 같다.”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고, 매일같이 그 원칙을 증명했다. 또한 “너 자신이 아니라 너의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유서 깊은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의 행정부에 최고의 각료들을 포진시켰다. 그가 각료들을 생각만큼 잘 다루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근래에 드물게 유능한 행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의 깜짝쇼
1974년 9월 8일 일요일 아침, 포드가 집권한 지 정확히 30일째 되던 날 백악관은 한 마디 사전 언질도 없이 대통령 특별 담화를 발표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이 담화는 백악관 내부에서 가장 신임받는 여섯 명의 보좌관들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언론은 무슨 얘기가 나올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11시 정각, 포드는 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성명을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나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이라는 확신이 서자마자 여러분과 모든 미국 시민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느꼈던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나 제럴드 포드는 헌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사면의 권리가 허락되었고, 이 선물에 의하여 미국의 국익에 반해 리처드 닉슨이 저질렀거나 저질렀을지 모를, 혹은 연루되었거나 연루되었을지 모를 모든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람, 리처드 닉슨에 대한 완전하고 자유로운 그리고 절대적인 사면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포드가 공식 사면문서에 서명을 한 직후, 리처드 닉슨은 샌 클레멘트에서 사면을 받아들인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교활하게도 법을 위반했다거나 은폐조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닉슨은 변호사와 의논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 냈다. 완전하고 충분한 사면과 범죄행위에 대한 부인,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의 장기적인 비밀보장까지도 말이다.
닉슨의 공식 사면문서에 서명을 한 포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후에 있을 골프회동을 위해 집무실을 떠나 버닝트리 컨트리클럽으로 향했다. 그러나 첫 번째 공을 티에 올려놓기도 전에 온 나라를 휩쓰는 마른 날벼락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국민들은 사면 소식을 듣고 분노했던 것이다.
대부분 국민들의 뇌리에는 닉슨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가 백악관에 대해 닉슨 대통령의 녹음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백악관은 법무장관과 차관에게 콕스 검사의 해임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법무장관과 차관이 한꺼번에 해임되었던 사건. 의회는 이런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특별검사제를 입법화했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드의 “일요일 아침의 깜짝쇼‘에서 닉슨식 비밀주의와 야합적인 밀실정치의 악취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면을 발표한 그 짧은 순간으로 인해 포드는 스스로 국민과 대통령을 이어 주던 실낱 같은 믿음의 끈을 끊어버렸다. 이튿날 피츠버그에서는 첫 비난성명이 터져 나왔다. 일부 시위대는 “포드를 감옥으로, 포드를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 노동자는 공항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대답했다. “오,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소. 포드는 닉슨에게 이렇게 말했을 거요. ‘당신이 내게 직업을 주면, 난 당신을 사면해 주겠소’라고 말이오.”
「뉴욕타임스」는 여론조사반을 현장으로 내보냈고, 71%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보였던 포드의 지지율이 하룻밤 사이에 49%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로 인해 포드는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자신의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미국을 이끌어 가야만 했다. 그가 리처드 닉슨에게 베풀었던 새 삶이 결국 자신의 정치 생명을 단축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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